‘비밀의 숲’ · ‘악의 꽃’ · ‘앨리스’ 다양한 무감정증 캐릭터
시청자 사로잡은 매력은?
[한국연예스포츠신문] 서지희 기자 = 드라마의 소재나 스토리는 시청자의 관심 대상이다. 시청 여부를 결정짓기도 하고, 드라마에 대해 가장 먼저 이야기되는 것도 소재와 스토리이다. 그러나 요즘, 이에 더해 시청자의 눈길을 끄는 요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주인공의 독특한 성격이다. 이들은 사회가 규정하는 정상 범주에서 조금 ‘벗어난’ 성향을 지녔다. 무감정증, 반사회적 인격장애 등이 그 예다.
최근 시즌 2로 돌아온 <비밀의 숲>의 ‘황시목’(조승우)이나 시간 여행 SF 드라마 <앨리스>의 ‘박진겸’(주원), 스릴러 멜로 <악의 꽃>의 ‘도현수’(이준기)가 그러하다. 각자 이유는 다르지만 이들은 공통적으로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한다. 지나치게 냉철하거나 때론 섬뜩함을 풍기기 때문일까. 시청자가 처음부터 이들에게 친숙히 다가서기는 어렵다. 그러나 회차를 거듭할수록, 점점 그들의 이야기에 매료된다. 의심과 호기심의 경계를 넘나들어 그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다. 시청자는 이러한 인물들에게서 어떤 의미와 감정을 읽어내고 매력을 느낄까? 그리고 특히 최근 들어 왜 범상치 않은 성격의 주인공들을 자주 접하게 될까?
감정이라는 족쇄에서 자유로운 편
<비밀의 숲> 주인공 황시목은 감정이 없는 캐릭터다. 사연은 이러하다. 선천적으로 외부세계 자극을 받아들이는 뇌섬엽이 발달한 시목은 절제 수술을 감행했다. 그런데 그 후유증으로 감정 전달 통로가 차단됐다. 대신 이성을 관할하는 뇌 부분이 상당히 발달하기 시작했다. 감정과 공감 능력이 자리해야 할 공간에 이성과 논리가 들어섰다. 그래서 그는 늘 혼자였지만, 누구보다도 냉철하고 이성적인 검사가 될 수 있었다. 주변의 상황과 시선에 흔들림 없이 그저 논리의 흐름대로 판단하고 사건을 처리했다. 감정을 배제하니 진실이 보였고 묵묵히 그 진실을 향한 발걸음을 뗐다.
<앨리스>의 박진겸은 선천적 무감정증을 지닌 캐릭터다. 감정이 없는 진겸은 타인의 아픔에 잘 공감하지 못했다. 엄마 선영은 그러한 그가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에 힘쓰며 진겸을 돌봤다. 그러나 선영이 정체 모를 존재의 습격으로 죽자 진겸은 그 범인을 잡기 위해 경찰이 된다.
사람이 감정을 느끼는 건 식물이 빛을 필요로 하는 사실 마냥 당연하다. 그런데 시목과 진겸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겨왔던 그 명제를 뒤엎었다. 반례의 습격이다. 이들은 남들에게 숨겨야 할 감정이 없고 따라서 본인의 감정을 억누를 필요 없다. 상황 때문에 본인의 감정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고 억압해야만 하는 현대인들에 비해 감정이라는 족쇄에서 자유로운 편이다. 이들은 본인 뜻대로, 이성의 판단대로 상황을 인식하고 행동한다.
미국 예일대 아동연구센터 교수이자 감성지능센터장 마크 브래킷은 20년 넘게 감정과 감성 지능을 연구해오며 ≪감정의 발견≫이라는 책을 저술했다. 책에서 그는 “현대인은 감정을 감추는 데에만 급급했는데, 성공하고 행복하기 위해선 감정을 현명하게 표출하고 사용해야한다” 라고 주장했다.
최근 감정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이 많아지면서 사회에서의 감정 교류를 점점 더 기피하고 극단적으로 소통을 차단해버리는 경우도 늘고 있다. 감정 표출이 점점 어려워지는 사회 분위기가 ‘감정 없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이들은 차라리 시목과 진겸처럼 사소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감정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일 없이 자신의 목표를 향해 묵묵히 나아가고 싶어한다.
비밀의 숲 시리즈 애청자 천형신(21, 대학생)씨는 “무감정증이라는 설정이 황시목을 법 그 자체인 영웅으로 만든다”라며, “흔들리는 정의 속에서 그만의 거침없는 행보가 시청자에게 통쾌감을 준다” 라고 황시목 캐릭터의 매력을 설명했다. “한편, 무감정증의 괴물성은 종종 측은지심을 유도함으로써 캐릭터에 대한 시청자의 몰입과 애정을 높여 주기도 한다”라고 덧붙였다.
편견과 선입견이 낳은 그림자
<악의 꽃>의 도현수는 감정을 느낄 줄 모른다. 어릴 적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낙인이 찍혀 불운한 삶을 살았다. 다행히 아내 차지원(문채원)과 가정을 꾸렸고, 세상 누구보다 다정한 사람이 된다. 그러나 그는 행복이라는 감정에 서툴러 웃는 법 강좌 동영상을 보며 자신의 입꼬리를 올린다. 그리고 자신의 과거사를 들추려는 인물 앞에서는 차갑게 돌변한다. 극 초반부에서는 그의 반사회적 인격 장애 성향이 많이 묘사됐다. 그러나 점점 그는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아내 지원의 사랑과 보살핌 끝에 현수는 차차 본인의 마음과 감정을 알아간다. 지원의 사랑이 현수의 그림자를 보듬어준 것이다. 이처럼 감정에 서투른 주인공이 주변 인물과 상호작용하며 변화해가는 모습은 지켜보는 이들에게 흥미를 안긴다. <비밀의 숲> 황시목이 수사 동료 한여진(배두나)과 함께하면서 점차 본인의 표정을 의식해 가고, <앨리스>의 박진겸이 윤태이를 만나고부터 감정에 흔들리는 모습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악의 꽃> 주인공이 자꾸만 눈에 밟히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건, 그를 향한 세상의 편견과 선입견이 낳은 자아의 그림자를 그가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그의 섬뜩한 눈빛은 자라오면서 받아온 편견을 내면화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과거의 기억 때문에 남들의 평판에 매달린다. ‘반사회적 인격장애’ 아이라는 선입견으로 상처받은 영혼 도현수를 그는 외면한 채 백희성의 삶만 갈망한다. 하지만 그랬던 그가 점차 도현수와 백희성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분열됐던 두 자아를 하나로 통합한다. 지원의 믿음을 발판삼아 진짜 자기 모습을 찾아가며 세상의 시선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
심리학자 융은 어떤 자아가 부정하고 수용하기 어려운 경향을 그 사람의 ‘그림자’로 정의한다. 단, ‘그림자’가 반드시 자신의 부정적인 측면이거나 완전히 부정해야 할 존재는 아니다. 이 개념에 착안해 만화가이자 문학 평론가 오쓰카 에이지는 그의 저서 ≪캐릭터 메이커≫에서 오히려 주인공은 그림자를 구원함으로써 자아실현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즉 그림자 캐릭터는 주인공의 자아실현을 ‘원조’하는 가장 결정적인 캐릭터다. 희성은 현수를 구원함으로써 자아실현을 완성했다.
편견이 난무하는 시대다. 사람들은 타인을 멋대로 판단하고 정의한다. 그리고 심판대에 올려 단죄한다. 극 초반 묘사되는 장면만을 보고 그를 의심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시청자는 점차 주인공 캐릭터를 보며 편견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이러한 세태에 공감한다. 그리고 타인의 시선에 굴하지 않는 단단한 자아 의식의 중요성도 깨닫는다. <악의 꽃> 애청자 원예원(22, 대학생)씨는 이러한 설정이 “도현수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을 만들지만, 긴장감 있는 서사 속에서 도현수의 인간적인 모습들도 포인트 있게 잡아 주기 때문에 오히려 그 대비적 요소들로 하여금 시청자가 감정적으로 드라마와 인물에 더욱 몰입할 수 있다”라고 언급했다.
기존의 공식 깬 색다른 여성 캐릭터
남들과는 조금 ‘다른’ 독특한 성격으로 시청자의 관심과 사랑을 받은 캐릭터는 이들이 처음이 아니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고문영(서예지)과 <이태원 클라쓰>의 조이서(김다미)를 빼 놓고 이야기한다면 섭섭할 것이다. 어릴 적 정신적 학대로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겪게 된 동화 작가 고문영은 타인과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지만 문강태(김수현)를 만나면서 타인과 소통하는 법을 배운다. 그렇게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치유해 간다. 그러면서 세상의 부조리와 편견을 직시하게 되는데, 선한 얼굴 뒤 가려져 있는 편견과 폭력에 분노하고 진실을 폭로하는 그녀의 행동이 통쾌하게 다가온다.
<이태원 클라쓰> 조이서는 IQ 167의 소유자로,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음악이면 음악 등 못하는 게 없다. 그런 그녀의 흠이라면 소시오패스 성향을 지닌 것 정도일까. 어릴 적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조이서는 승부에 대한 집착이 강한 편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를 악용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현실주의자에 가까워 보인다. 자신과는 다르게 손해를 보면서도 비상식에 대항하는 박새로이(박서준)에게 호감을 느끼기도 하며, 그의 모습에서 잃어버린 삶의 의미를 찾기도 한다. 권력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정의를 뚝심 있게 밀어붙이며, 마침내 박새로이의 사랑을 얻어 낸 조이서의 당찬 매력이 여운으로 남는다. <이태원 클라쓰>를 즐겨봤던 최지원(22, 대학생)씨는 “자신의 목표에 거침없이 돌진하는 조이서 캐릭터가 굉장히 합리적으로 보였고, 직설적인 조이서의 모습이 마치 사이다처럼 시원시원해서 좋았다”라고 전했다.
이처럼 요즘 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예사롭지 않은 성격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며 이들을 사로잡고 있다. 지금까지 사회가 암묵적으로 요구해온 ‘정상’과 ‘이상(理想)’ 범주에 속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강박이 스스로를 지치게 만들었을까? 이들은 회의감에 그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 갈망이 앞서 보았던 캐릭터들을 만들었고, 대중은 이들에게서 대리 만족을 느꼈을 수도 있다. 조금은 유별나도 괜찮다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주인공들을 바라봐 주고 이에 공감했듯이, 타인도 본인도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봄은 어떨까.
September 10, 2020 at 12:2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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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특별'해도 괜찮아···드라마 속 독특한 캐릭터들의 매력 - 한국연예스포츠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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