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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서울 성북구의 호텔 리모델링형 공공임대주택 ‘안암생활’ 내부 모습. 연합뉴스
지난달 정부가 청년 주거지원 정책의 하나로 호텔을 개조해 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하자,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호텔 거지’라는 등 조롱하는 말이 돌았습니다. 심지어 정치권에서도 정부의 이런 주택정책을 비판하며 이 표현을 인용해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는데요. 국어사전은 ‘거지’를 ‘남에게 빌어먹고 사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호텔 주택에 입주한 청년들, (저를 포함해) 호텔 주택을 보고 진심으로 구미가 당긴 청년들까지 졸지에 모두 이 사회의 ‘무능력자’ 또는 ‘무임승차자’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요. 안녕하세요? <한겨레> 사회부 박윤경입니다. 20대 여성이고, 운 좋게도 서울 모처에서 부모님의 집에 기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독립을 꿈꾸다가도 통장을 들여다보면 부모님께서 막내딸을 향한 지금의 관대한 마음을 최대한 오래 유지하시길 바라게 됩니다. 지난 1일 공개된 서울 성북구의 호텔 주택 ‘안암생활’을 보자, 정말 마음이 솔깃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울에서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27만∼35만원 수준으로 13∼17㎡의 방을 구하기란, 한 청년 인터뷰이의 말대로 “하늘의 별 따기”니까요. 지난 3일 호텔 주택을 둘러싼 갑론을박에 대해 기사를 쓰며 이야기를 나눈 청년들은 “‘안암생활’ 정도면 찾기 힘든 자취방”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호텔 거지가 양산됐다’는 우려(?)와는 사뭇 다른 반응이지요. 서울 관악구에서 비슷한 가격의 원룸에 사는 대학생 윤아무개(23)씨는 “빛이 잘 드는 큰 창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고 말했습니다. 책상과 침대만 간신히 들어가는 윤씨의 “고시원룸”에도 창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책가방 하나로 다 가려질 정도로 크기가 작은데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고시촌 특성상 옆 건물에서 안이 들여다보일까 두려워 맘대로 열기도 어렵습니다. ‘안암생활’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 대학생 최아무개(25)씨도 “이 일대 신축 원룸은 기본 월세 60만원이 넘는다. 40만원 이하는 아주 좁거나 반지하인 곳이 대다수”라고 전했습니다. 4평 원룸에 살며 아르바이트 월급 130만원 중 매달 주거비로 40만원가량을 지출하는 이아무개(32)씨는 최근 겨울 외투를 사려다 마음을 접었다고 합니다. 비싸서였을까요? 물론 나머지 90만원에서 식비, 교통비, 통신비, 교제비 등을 빼고 나면 돈이 거의 남지 않는 것도 사실이지만, 가격이 발목을 잡은 건 아니었습니다. 결정적 이유는 “더 이상 보관할 공간이 없어서”였습니다. 이씨는 “겨울 외투가 워낙 부피가 크다 보니 패딩과 코트를 한벌씩 걸어놓은 뒤엔 옷장에 더 여유가 남지 않는다”며 “옆방 사람들은 공용 복도에 옷 상자를 쌓아 두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호텔 거지’ 같은 비난은 되레 청년들이 처한 주거 현실을 외면한다”며 청년들이 한목소리를 낸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청년들은 지낼 곳을 거저 제공받기를 원하는 게 아닙니다. 주거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장학금을 받으려 하고, ‘사회 초년생’이라며 착취하고 폭언하는 직장도 때론 꾹 참고 버팁니다. 하지만 도시의 주거비는 청년들의 낮은 소득에 비해 이미 드높이 치솟아 있고, 청년들로선 ‘주거권 보장’을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전세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진 못할지라도 정부가 호텔 리모델링형 임대주택 사업을 추진한 것도 이런 요구를 고려한 결과였을 것입니다. 다만 정부가 호텔 주택을 두고 ‘청년 1인 가구에 굉장히 좋은 환경’이라고 평한 데 대해선 완전히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주방과 세탁실은 개인실에 포함돼 있지 않아 공동 공간을 사용해야 하고, 책상과 침대 등 최소한의 가구만 마련된 4∼5평 크기의 원룸을 과연 ‘굉장히 좋은 환경’으로 평할 수 있을까요? 혹시 ‘다른 집단은 몰라도 청년 1인 가구에는 좋을 것’이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는 건 아닐까요? 그렇다면 청년 1인 가구는 왜 항상 보편적 기준에서 배제된 채 별도로 고려돼야 하는 걸까요? 물론 더 이상의 ‘가성비’를 내기란 서울 도심에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환경이라는 점은 동의합니다만. 정부가 이렇듯 씁쓸한 현실을 겸허히 돌아보기보단 손쉽게 정책을 ‘셀프 칭찬’ 한 것만 같아 아쉬웠습니다. 대학생 최씨의 말을 옮기며 글을 마무리해볼까 합니다. “사실 아무리 여건을 개선했다 해도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 ‘청년들 살 곳은 최소한만 갖춰도 충분하다’는 인식이 기저에 계속 깔려 있는 것 같아요. 정책을 고안하는 이들, 비난을 쏟아내는 이들 모두 이런 곳에 살 일은 절대 없으니까요. 그래서 청년 주거에 대한 논의가 삶의 질이 아니라 ‘가성비’ 위주로만 흘러가는 게 아닐까요?” 박윤경 편집국 사회부 기자
yg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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