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식품부도 농민 견제 분위기
‘농민 주도 수급정책’ 물거품?
[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출범이 임박한 마늘·양파 의무자조금에 최대의 갈등이 불붙었다. 대의원 선출을 앞두고 농협 측이 과반 의석 장악을 시도하고 나서면서 농민들이 반발한 것이다. ‘생산자 주도형 수급정책’을 구축한다던 본래 취지가 심각하게 훼손될 위기에 처했다.
마늘·양파 의무자조금 출범은 지난해 7월 대통령의 ‘근본적 수급대책 마련’ 지시에 따라 농식품부가 역점적으로 지원해온 사업이다. 의무자조금을 통해 생산자가 직접 정책을 끌어갈 수 있는 새로운 수급조절 모델을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신생 농민단체인 전국마늘·양파생산자협회(협회)는 정책 취지에 공감하고 의무자조금 준비에 주도적으로 나섰다. 지난 1월부터 이어진 전국 마늘·양파농가 순회설명 및 가입명부 작성이 대부분 협회의 주도와 노력하에 이뤄진 성과다.
문제는 농식품부가 의무자조금을 한국마늘·양파산업연합회(연합회)의 조직 틀 안에서 발족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연합회는 지역농협과 일부 유통업자들로 구성된, 기존 임의자조금 운영 단체다. 즉, 농민들의 독자적 의무자조금 발족을 막고 농협과 강제 동행시킴으로써 갈등의 씨앗을 심어 놓은 것이다.
갈등은 지난달 말부터 표면화됐다. 지난달 말 연합회 이사회는 의무자조금 대의원 후보등록을 앞두고 100만원의 공탁금을 내도록 결정했다. 100만원은 지역농협들에겐 푼돈에 불과하지만 농민들에겐 상당한 부담이 되는 액수다. 농민들의 후보등록을 방해하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경제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이 지난 3일 후보등록을 완료했지만 그걸로 끝난 건 아니었다. 마늘·양파 각각 120명의 대의원 중 농협은 마늘 61명, 양파 65명의 조합이 후보로 등록했다. 두 품목 모두 칼같이 절반을 넘긴 숫자다.
의무자조금은 연합회 조직 내에 구성되며 대의원 선출은 선거가 아닌 농민-농협 간 합의로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때문에 농협이 끝까지 물러서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농민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양보 또는 철수다. 어느 쪽이든 의무자조금은 농협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된다.
등록된 농협 측 대의원 후보 면면을 살펴보면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 마늘과 양파 의무자조금에 중복 등록한 조합이 있는가 하면, 최근 연합회에 신규 가입한 조합들이 모두 등록하면서 과반 장악을 위한 ‘조합 동원’ 의도도 의심된다.
‘생산자 후보’로 분류된 쪽에도 친농협 후보들이 상당하다. 당장 확인되는 사례만 꼽아보더라도 조합으로 등록한 조합장 몇몇이 생산자 개인 자격으로 별도 등록했으며 농협 임원, 연합회 소속 유통업자, 심지어 농협공판장 중도매인까지 생산자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실제론 농협이 과반을 넘어 3분의2 이상의 의석을 노리고 있다는 뜻이다.
농민들은 노발대발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지난 8일 성명을 내 “농식품부와 농협이 이제껏 생산자들과의 협의는 깡그리 무시하고 아무 역할도 못했던 농협의 임의자조금을 확대해 새로운 관변단체를 만들려 하고 있다. 거기에 생산자들에게 재배면적을 조절하는 의무와 책임만 강제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농식품부 차관이 조합장 간담회 당시 ‘조합장들이 대의원으로 다 들어가야 한다’고 유도했다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마늘·양파협회도 이튿날인 9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농식품부와 농협을 규탄했다. 김병덕 양파협회 사무총장은 “대통령이 장관에게 지시해서 만든 마늘·양파 의무자조금이 과연 대통령의 말씀대로 수급에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있겠나. 절대 그렇지 않다. 이는 대통령이 책임져야 할 문제”라고 호소했다.
의무자조금의 의사결정은 사안에 따라 대의원 절반 혹은 3분의2 이상의 동의를 통해 이뤄진다. 농민들은 농협 측 후보를 정원의 3분의1 미만인 45명 수준으로 정리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처음부터 농민들이 단독적·주도적으로 뛰어들었으며, 당초 농민-농식품부 간 협의에 농협 참여는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농민들에게 오롯이 자율권을 인정해 줘야 한다는 취지다.
이에 농식품부는 최근 중재를 통해 조합 후보를 마늘 49명, 양파 50명까지 정리하고 있지만 그 이상 적극적으로 나서진 않으려는 눈치다. 농식품부로선 아무래도 농민들보다는 친정부 성향을 띠는 농협이 달가울 수밖에 없다. 애당초 의무자조금에 농민-농협 갈등구도를 설계한 장본인이 농식품부이기도 하다. 농협 대의원이 49명·50명이면 그 자체로 대의원 3분의1 이상을 차지해 농민들의 의사결정을 저지할 수 있으며 ‘생산자’로 분류된 친농협 대의원까지 합치면 사실상 과반 의석도 불가능한 게 아니다.
올해 상반기 내내 전국을 누비며 의무자조금의 기틀을 닦아온 건 농식품부나 농협이 아닌 농민들이다. 하지만 현재 농민들은 자칫 농협의 의무자조금 출범과 농식품부의 정책명분 마련을 위한 도구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농민들의 저항이 날로 거세지는 가운데, 오는 23일 대의원 선출로 닻을 올릴 마늘·양파 의무자조금이 ‘생산자 주도형 수급모델’이라는 본래의 궤도로 복귀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une 14, 2020 at 04:0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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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양파 의무자조금 '농민 밀어내기' 눈살 - 한국농정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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