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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July 25, 2020

카페 벨에포크 - 사랑에 대한 조금 잔인한 해부 - 울산제일일보

saoskalo.blogspot.com
카페 벨에포크>에서 빅토르(다니일 오떼유)는 한물 간 만화가다. 젊은 시절 신문에 기고하는 삽화로 이름을 조금 알렸지만 종이 신문이 사라지고 인터넷 신문으로 대체되면서 실직한 지 오래됐다. 그에겐 아내 마리안느(화니 아르당)가 있었는데 그녀는 빅토르의 친구인 프랑소와(드니 포달리네스)와 몰래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 정신과 의사로 아직도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 마리안느의 머릿속엔 지금 남편인 빅토르와 이혼할 생각밖에 없었고, 결국 한바탕 크게 싸운 뒤 남편을 집에서 쫓아내 버린다.
그 즈음 한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프로듀서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빅토르의 아들 맥심(미카엘 코헨)은 점점 활력을 잃어가는 아버지를 위해 시간여행을 준비한다. 아버지가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과거로 잠시나마 돌아갈 수 있도록 친구 앙투안(기욤 까네)에게 부탁하게 된다.

이쯤 되면 앙투안이 타임머신을 발명한 엄청난 과학자쯤 될 거라 생각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앙투안의 직업은 연출자로 그는 100%핸드메이드 시간여행 서비스를 의뢰인에게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의뢰인이 돌아가고 싶은 과거의 어느 순간과 기억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 앙투안은 그것에 맞춰 세트를 짜고 배우들에게 연기를 시켜 과거를 연출한다. 그렇다면 빅토르가 돌아가고 싶어 하는 과거는 과연 어딜까? 공교롭게도 그가 돌아가고 싶어 하는 과거는 아내인 마리안느와 처음 만났던 순간이었다. 바로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카페 벨에포크’라는 곳이었다.

사랑이라는 것도 원래 늙고 병이 든다. 노력? 필러니 보톡스니 아무리 해봐라. 안 늙나. 사랑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뜨겁게 물을 끓여도 결국은 식어버리듯 열정이 빠져나간 뒤의 노력은 늘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겠나? 연애도 아니고 결혼까지 했으면 전우애로라도 계속 살아야지. 하지만 마리안느는 이혼을 감행한 뒤 새로운 연인을 찾아 떠나려했다. 반면 빅토르는 처음 마리안느를 만났을 때의 그 찬란했던 순간을 다시 찾기 위해 과거로 떠났다.

카페 벨에포크>에서는 이 두 선택이 불러일으키는 결과가 흥미롭고 꽤 의미심장한데 그건 바로 ‘사랑의 실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영화 속에서 노년의 빅토르와 마리안느가 그렇듯 다들 평생을 사랑에 목을 매며 살아가지만 따지고 보면 사랑도 그냥 ‘기분’일 뿐이다. 바로 행복한 상태. 실제로 처음 누군가를 보고 호감을 느낄 때 우리 몸속에서는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이 먼저 나오게 된다. 이후 그 사람과 사랑에 빠지게 되면 이젠 ‘페닐에틸아민’이라는 호르몬이 생성된다. 그러다 스킨십을 하면서 자고 싶다는 충동이 들면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튀어나온다.

그리고 관계가 안정되고 서로에 대한 관심이 소중함으로 느껴질 때 마침내 ‘엔돌핀’이라는 호르몬이 나온다. 바로 행복의 호르몬. 이런 과정이 좋아 다들 사랑에 목을 매는 게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 말인 즉은 결국 엔돌핀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 사랑을 하려들지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은 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영화 속 주인공이나 부모의 사랑도 아니고. 해서 남녀 간의 사랑이란 전혀 위대하지 않다.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그저 쾌락을 좇는 과정일 뿐이지 않을까.

카페 벨에포크>에서 빅토르와 마리안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시간여행을 통해 아내와 처음 만났을 때로 돌아가려 했던 빅토르는 조금 순수한 영혼이지 않을까 싶겠지만 그는 아내 마리안느의 젊은 시절 대역인 마고(도리아 틸리에)의 매력에 흠뻑 빠져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 순간 그가 사랑하게 된 건 지금의 마리안느도, 젊은 시절의 마리안느도 아닌 마고라는 젊고 새로운 여자였다.

그랬으니 아내 마리안느가 자신의 친구인 프랑소와와 바람이 났다는 걸 알게 되고도 그저 웃어넘긴다. 왜? 자긴 이미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마리안느는 또 어떤가. 남편을 집에서 쫓아내고 프랑소와를 집으로 불러들여 동거를 시작하지만 그때부터 프랑소와의 단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남편과 이혼을 결심할 정도로 그를 열렬히 사랑하는 듯했지만 그녀는 프랑소와의 코골이 습관조차 이해 못해준다. 애초에 자기 좋으려고만 하는 사랑이었기 때문. 한편 빅토르가 사랑하게 된 마고는 시간여행 연출자인 앙투안의 애인이었다. 앙투안은 마고가 조금 지겨워지면 의뢰인의 연인 역할을 시켜 관음증 비슷하게 흥분을 느낀 뒤 다시 그녀와 뜨겁게 잠자리를 가졌다. 하지만 마고는 빅토르의 진심 앞에 이번엔 제대로 끌리게 됐고, 그걸 알게 된 앙투안은 시도 때도 없이 “잤냐?”고 묻는다. 결국 다들 저질들이었고 이 영화에선 ‘카페 벨에포크’라는 단어만 반짝반짝 빛이 날 뿐이다.

결론이 아름답다고 하는데 내 생각은 전혀 다르다. 대부분의 시간여행 영화가 그렇듯 빅토르의 시간여행으로 현재는 뒤틀려버리고 감독은 마치 관객들에게 이렇게 묻는 듯하다. “이런 사랑을 또 하고 싶니?” 그 순간 난 속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 얼마나 갈 진 모르겠지만.

2020년 5월 20일 러닝타임 115분.

취재1부 이상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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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3, 2020 at 06:55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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