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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June 28, 2020

차지연 “조금 다른 명성황후… 해석 폭 넓혔죠”[인터뷰]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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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얼굴 1895'에서 명성황후(민자영)을 연기한 배우 차지연의 모습.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민자영을 악녀이면서 아픔을 지닌 입체적 인물로 그려냈다. 서울예술단 제공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 2013년 초연 당시 배우 차지연은 명성황후(민자영)를 연기했고 이런 찬사가 나왔다. “역시 차지연”. 정작 그는 대본을 받은 후 한참 고민했다. ‘조선을 위해 목숨 바친 국모’ 명성황후의 이미지와 극 중 권력욕에 사로잡혀 광기를 보이는 민자영의 모습이 너무나 큰 차이를 보여서다. 연구 끝에 그는 민자영을 악녀이면서도 아픔을 지닌 입체적 인물로 그려냈고, ‘잃어버린 얼굴 1895’의 2015년 재공연에서는 좀 더 원숙한 모습을 보여줬다.

차지연은 23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국민일보와 만나 “2013년과 2015년 때는 황후의 모습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어머니로서의 민자영이 마음에 들어온다”며 “앞선 공연에선 극 중 상황에 몰입했다면 이번에는 그가 걸어간 여정의 본질을 찾는데 몰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4년 만에 ‘잃어버린 얼굴 1895’에 돌아오기까지 차지연의 신상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2015년 결혼했고 이듬해 아들을 얻었다. 그래서 2016년 ‘잃어버린 얼굴 1895’ 공연에선 출산과 육아로 잠시 무대를 떠났던 김선영이 그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후 차지연도 출산 이후 복귀해 활발하게 활동하던 중 암초를 만났다. 지난해 4월 갑상선암 판정을 받은 것이다. 이후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에서 하차한 뒤 치료에 전념했던 그는 1년만인 지난 5월 1인극 ‘그라운디드’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미국 극작가 조지 브랜트의 모노극으로 최정예 전투기 조종사가 예상치 못한 임신으로 드론을 다루는 보직으로 발령 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차지현은 인간 내면의 양면성을 밀도 높게 표현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차지연은 “아프고 나니 무대가 얼마나 감사한 곳인지 알게 돼서 더 절실했다”며 “주변에서 ‘에너지를 아끼면서 하라’는 조언을 했지만 모든 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기로 했다”고 전했다. 당시 무대 복귀에 집중하기 위해 인터뷰 등도 거절했다. 이번에 자신의 대표작 중 하나인 ‘잃어버린 얼굴 1895’에 출연하면서 언론 인터뷰에 응한 것은 그가 여유가 생겼다는 뜻일 것이다.

2015년 공연 당시 모습. 뉴시스

‘잃어버린 얼굴 1895’는 명성황후가 단 한 장의 사진도 남기지 않았다는 역사적 기록에서 착안한 팩션극이다.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명성황후의 진짜 얼굴을 찾기 위한 여정을 그린다. 지금까지 그의 일생을 다뤘던 작품이 상당 부분 그를 미화했다면 이번 공연은 철저히 중립이다. 시아버지인 흥선대원군에게 맞서고 가문의 권력을 위해 광기를 내뿜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명성황후의 모습과 그 이면에 서린 자식들을 잃은 슬픔과 고종과의 대립에서 오는 고뇌를 지닌 민자영을 함께 보여준다.
2015년 공연 당시 모습. 뉴시스

차지연은 “명성황후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여러 갈래지만 지나지게 신격화된 측면이 없지 않다”며 “기존의 시선을 내려놓고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자는 생각으로 접근했다”고 했다. 역사를 토대로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고 다양한 시각을 열어두다 보니 차지연의 역할은 커졌다. “라이선스 작품은 검증이 돼 있어서 매뉴얼대로 따라가기만 해도 완성도를 잡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이번 공연은 배우의 해석과 호흡에 따라 극의 색이 완전히 달라져요. 배우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넓었고 그 과정이 좋았어요. ‘아, 내가 살아있구나’ 느꼈다고나 할까요.”
'잃어버린 얼굴 1895'에서 명성황후(민자영)을 연기한 배우 차지연의 모습.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민자영을 악녀이면서 아픔을 지닌 입체적 인물로 그려냈다. 서울예술단 제공

차지연이 생각하는 민자영은 ‘예민한 여인’이다. 상황에 따라 그가 입는 옷이나 말투, 심지어 발소리마저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민자영이 간택 받던 날의 표정,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무렵의 숨소리, 고종과 대립할 때의 눈빛을 입체적으로 그렸다. 차지연은 “대사는 몇 마디 없고 장면 전환은 아주 짧은 사이에 이뤄지는데 역사적으로는 몇 년이 흘렀다는 걸 보여줘야 했다”며 “한 여인의 삶과 굴곡에 초점을 맞춰 새싹처럼 푸르렀던 민자영이 갈변하고 말라 바스러지는 여정에 몰입했다”고 설명했다.

올해 민자영은 2013년과 2015년의 민자영과는 분명 다르다. 아이를 낳으면서 차지연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모든 상황에서 아이라는 존재를 배제할 수 없게 됐고, 민자영 캐릭터에 대한 해석도 달라졌다. 그는 “초연 당시에는 감정에 집중해 슬픔을 알리려고 애썼다면 지금은 힘을 빼고 담백해졌다”며 “아이를 낳으면서 인간 민자영의 모습을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가 놓인 상황의 치열함에 대한 공감의 폭이 깊어졌다”며 “민자영이 왜 악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권력을 탐했는지 본질적인 이유를 이해하려고 했다. 관객에게 공감을 전할 수 있는 깊이가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2015년 공연 당시 모습. 뉴시스

차지연은 여전히 명성황후가 사진을 남기지 않은 이유를 고민한다. 카메라가 들어온 19세기 말부터 왕족의 초상사진이 역사적 기록물로 남았다. 하지만 유독 명성황후의 사진만 공식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그로 추정되는 사진이 몇 장 발견되긴 했지만 진위 논란이 분분하다. 역사적으로 여러 해석이 나온다. 암살을 피하고자 사진을 남기지 않았다거나 일본이 모두 불태웠다는 추정 등이다. 차지연은 “사진을 찍지 않는 이유를 명확하게 결론 내리지 않는다”며 “조선이 새로이 굳건히 서는 날 모습을 담고 싶다는 대사가 나오긴 하지만 판단은 관객의 몫”이라고 설명했다. 극에서는 샤머니즘으로 해석할 가능성도 열어놨다.

황후: 사진을 박으면 그 사람 혼도 함께 박히는 것입니까? 마음도 함께 박히는 것입니까?
휘: 글쎄요. 우리 조선사람들 중에는 사진을 박으면 혼비백산하여 영혼이 달아난다고 사진 박는 것을 꺼리는 사람이 있지요.
황후: 나도 그 조선사람 중 하나인가 보오.

차지연은 ‘잃어버린 얼굴 1895’는 장르의 다양화 차원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지나치게 친절한 작품이 아니라 좋아요. 관객에게 극을 보고 사고 할 기회를 선사하고 싶어요. 전개가 친절하지 않아서 낯설고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관객이 생각할 수 있는 폭을 넓혀주는 작품이죠. 이런 공연은 필요해요.”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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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9, 2020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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