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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October 3, 2020

양형 이유로, 범행 수법으로…판결문에 등장한 코로나19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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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첫 확진자 발생 뒤
‘코로나19’ 판결문 210여건 분석
보건당국 직원이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방역 활동을 하고 있다. 원주시 제공
보건당국 직원이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방역 활동을 하고 있다. 원주시 제공
2020년 1월8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나라에 상륙한 뒤 수개월간 이어지고 있는 ‘감염병과의 싸움’은 새로운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고 법정 다툼으로 번지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범행 수법으로 악용되거나 징벌을 선처하는 양형 사유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겨레>가 대법원 인터넷 판결문 검색 시스템에서 코로나19를 열쇳말로 판결문 검색을 해 본 결과 지난 3월19일부터 현재까지 210여건의 형사사건 판결문을 찾아볼 수 있었다. ■ 생계형 범죄부터 가짜 다이어트약 사기까지 강화된 사회적 거리 두기와 날로 움츠러드는 소비심리 탓에 자영업자 도산과 실직이 커다란 사회 문제로 자리 잡았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법원도 생계형 범죄에서 코로나19를 사유로 형량을 줄여주고 있다. 음식점에서 청소년 5명에게 술을 판매한 혐의로 기소된 ㄱ씨 사건에서 대전지법 형사1단독 오세용 부장판사는 선고를 유예했다. 오 부장판사는 “ㄱ씨가 홀로 주방과 홀 서빙을 도맡아 하느라 손님으로 온 청소년들의 나이 검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코로나19의 유행과 사회적 거리 두기로 ㄱ씨를 비롯한 자영업자의 생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선고유예 판결을 받으면 영업정지 기간이 짧아질 가능성이 있는 점도 참작했다”며 선처했다.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된 ㄴ씨도 법원의 ‘집행유예’ 선처를 받았다. ㄴ씨는 은행 직원을 사칭하며 접근한 ㄷ씨가 “체크카드를 빌려주면 신용등급을 올린 뒤 대출을 해 주겠다”고 한 말에 속아 체크카드를 건넸다. 그러나 ㄴ씨의 카드는 보이스피싱에 이용됐고, 결국 그도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대구지법 형사3단독 김형태 부장판사는 “ㄴ씨가 코로나19로 실직 위기에 놓여 생계자금을 대출받으려다 꾐에 빠졌고 실제 얻은 이익이 없다”며 징역 5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에 동참한 피고인의 행보가 양형에 반영된 사례도 있다. 세번째 음주운전이 적발된 ㄹ씨 사건에서 대구지법 포항지원 형사2단독 이준영 부장판사는 “ㄹ씨가 반성의 시간을 보내면서 코로나19 파견의료 인력에 지원해 중환자실 간호 업무에 매진한 점 등을 양형에 참작했다”며 그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1년6개월을 선고했다. 가짜 다이어트 식품을 팔다 적발된 ㅁ씨에 대해서도 울산지법 형사8단독 정현수 판사는 “ㅁ씨가 (다이어트 식품을 구매한) 피해자 다수가 누구인지 알기 어려운 점을 고려해 코로나19 특별성금으로 상당한 액수를 기부했다”며 이를 감형 사유로 반영한 뒤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및 벌금 2천만원을 선고했다. ■ “마스크 왜 안 파냐”, “나 코로나 걸렸다”…업무방해·공무집행방해 사건도 증가 엄격한 방역수칙과 강화된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조하다 발생하는 갈등은 폭행 사건으로 커지기도 했다. 마스크 구매나 긴급재난지원금 신청, 방역 업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이나 의료진, 가게 업주 등을 상대로 한 업무방해와 공무집행방해 사건도 코로나 시대에 볼 수 있는 범행이었다. 경기 부천시에 거주하던 한 중국인은 마스크 5부제가 한창 실시되던 지난 3월, 약국에서 5부제 때문에 마스크 당일 판매가 불가능하다는 말을 듣자 “그럼 난 마스크도 못 쓰고 코로나 걸리라는 거냐! 코로나 걸리면 책임질 거냐!” 라고 고함을 치며 소란을 피웠다. 이 일로 그는 경찰에 연행돼 재판을 받게 됐다. 인천지법 부천지원은 “마스크의 질서 있는 배분을 위해 시행된 마스크 5부제를 지키지 않고 약국의 업무를 방해해 비난 가능성이 높다”며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긴급재난지원금을 신청하기 위해 경남 김해시 행정복지센터에 들렀다 제지를 당하자 난동을 피운 ㅂ씨도 법정에 섰다. ㅂ씨는 “경남형 긴급재난지원금은 이미 받아서 다 썼다. 난 오늘 정부형 긴급재난지원금을 신청하러 왔고, 오늘 안주면 안가겠다”고 버텼다. 결국 경찰이 출동했지만 ㅂ씨는 경찰관의 멱살을 잡고 배를 발로 차 재판에 넘겨졌다. 창원지법 형사1단독 김민상 부장판사는 그에게 집행유예형을 선고하면서 “피고인이 갑자기 과도한 행위를 해 심리적·정신과적 상담이 필요해 보인다”며 보호관찰도 함께 명했다. 택시기사를 폭행해 경찰서에 연행된 ㅅ씨는 유치장에서 나가기 위해 코로나19를 악용했다. 경찰에게 “나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렸다, 형사님도 이제 바이러스에 걸린 거예요”라고 말한 뒤 인근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았지만 음성 판정이 나왔다. ㅅ씨의 거짓말 때문에 그가 입감됐던 유치장과 형사과 사무실은 잠정 폐쇄됐고 접촉 경찰관 9명이 격리된 상황이었다. 결국 ㅅ씨는 앞선 운전자 폭행 사건과 상해, 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됐고, 인천지법은 그에게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했고 2심에서도 실형(징역 8개월)이 유지됐다. 재경지법에서 형사사건을 맡고 있는 한 부장판사는 “코로나19와 관련된 형사사건이 주로 저소득층이나 정신질환자 중심으로 늘고 있다. 생계형 범죄나 절도, 폭행 사건 등이 그 예”라며 “형사처벌로 끝낼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고 짚었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과)는 “방역지침이 엄격해지면서 공권력에 저항하는 형태의 공무집행방해나 업무방해 범죄도 늘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교육 수준이 낮거나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사람들이 (현 상황에서) 스트레스에 취약해지기 쉽고, 이것이 범행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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