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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October 4, 2020

[단독]‘민주화운동 정신적 배상 가능’ 헌재 결정 부정한 판결,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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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5 06:00 입력 2020.10.05 06:0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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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2013년 3월21일 유신체제 하에서 민주화운동을 탄압하는 도구가 됐던 긴급조치 1·2·9호에 대해 재판관 전원 일치로 위헌 결정을 내리고 있다. /정지윤기자

헌법재판소가 2013년 3월21일 유신체제 하에서 민주화운동을 탄압하는 도구가 됐던 긴급조치 1·2·9호에 대해 재판관 전원 일치로 위헌 결정을 내리고 있다. /정지윤기자

지난해 9월 ‘민주화운동 보상금을 받았더라도 고문 등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한 정신적 손해배상 청구는 가능하다’는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를 부정하는 1심 판결이 나와 논란이 됐다. 최근 2심 재판부가 이를 뒤집고 국가배상 청구권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이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판례를 바꿀지 주목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7-1부(재판장 황정수)는 지난달 10일 김모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김씨 패소 판결한 1심을 뒤집고 국가가 김씨에게 1억18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김씨는 유신정권 때인 1977년 김지하 시인의 시 ‘오적(五敵)’을 유포해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확정받고 형기를 마쳤다. 김씨는 2013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후 그는 국가를 상대로 구금·가혹행위 등에 대한 정신적 손해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대법원은 2018년 5월 김씨 패소 판결을 확정했다. 민주화운동보상법에 따른 보상금을 받은 이는 재판상 국가와 화해한 것으로 보고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한 정신적 피해에 배상 청구를 할 수 없다고 한 2015년 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따른 것이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문건에 ‘박근혜 대통령 국정운영 뒷받침 협력 사례’로 기재돼 재판 거래 의혹이 불거진 판결이다.
 
그런데 헌재가 2018년 8월 대법원 판례와 배치되는 결정을 내리면서 피해자들이 국가에 배상 책임을 물을 길이 열렸다. 헌재가 국가 보상금을 지급받은 경우라도 불법행위에 따른 정신적 손해까지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국가배상 청구권을 침해해 ‘위헌’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후 많은 하급심 판결에서는 정신적 피해에 대한 국가배상 청구권을 인정했다.
 
김씨도 지난해 2월 다시 소송을 냈다. 하지만 1심 재판부가 헌재 결정에 반하는 판단을 내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7단독 권순호 부장판사는 지난해 9월 김씨의 청구가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보고 각하했다. 헌재가 ‘위헌’으로 분류한 결정이지만 법원은 내용상 ‘한정위헌’으로 보이기 때문에 따르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한정위헌은 법률에 대한 해석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보는 것이다. 대법원은 한정위헌 결정의 기속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법률의 위헌 여부에 관해서는 헌재에 최종적 판단 권한이 있다 하더라도 법률 해석에 대한 판단 권한은 법원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반면 항소심은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이 사건 위헌 결정은 (중략) 이른바 양적(量的) 일부위헌 결정에 해당할 뿐 법률의 해석 기준을 제시하는 한정위헌 결정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양적 일부위헌 결정은 법률의 일부를 위헌으로 보는 것이다. 대법원은 한정위헌 결정 중 양적 일부위헌 결정을 선별해 그에 대한 기속력은 인정해왔다. 항소심 황정수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헌법연구회 회장이다.
 
헌재 결정을 두고 헌재와 법원은 종종 상반된 견해를 보여왔다. 한정위헌과 일부위헌의 경계가 모호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2018년 헌재가 민주화보상법 18조2항 위헌 결정을 내렸을 때도 헌재와 대법원은 엇갈린 입장을 내놨다. 당시 국감에서 김헌정 헌재 사무처장은 “명백한 일부위헌”이라고 말했지만,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한정위헌인지 일부위헌인지 여러 견해가 있다. 재심이 청구되면 해당 재판부가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헌재 결정을 한정위헌이라고 본 1심 판결을 두고 한 부장판사는 “최근 흐름에 맞지 않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최근 헌재는 한정위헌 결정을 거의 내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홍 헌법재판소 재판연구관이 지난해 5월 발표한 학술논문 ‘한정위헌결정의 종말? 최신 결정례를 계기로 살펴본 한정위헌의 본질’을 보면 헌재는 2012년까지 한정위헌 결정을 매년 1~3건 가량 선고했지만 2013년 이후 한정위헌 실질 선고 건수는 2014년 한 건에 그친다.
 
김씨 사건은 지난달 25일 국가가 상고함에 따라 대법원에서 최종 결론이 내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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